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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설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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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림사 댓글 0건 조회 1,253회 작성일 21-03-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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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설의 평가

이상 소개한 것이 불교의 삼세업보,
육도윤회설의 대강인데,
이것은 실천적 인간의 시야를 현세의 테두리를 벗어나
무한한 시공 속에 펼치게 하며, 악을 멸하고 선을 행하는
강력한 의지적 인간상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설은 종래 학계에서 올바른 이해를 받지 못한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진정한 불교 교리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일도 있다.
업설에 대한 그러한 부정적 평가 중에

첫째로서 우리는 업설을 단순한 숙명론으로 보려는 견해를 들 수가 있다.
업설은 현세의 괴로움을 숙세의 인연으로 돌리고
체념하라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현재 받고 있는 괴로움이 숙세의 업인에 의한 것도 없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불교 업설의 목적은 그것을 체념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인생관에 목적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불교의 업설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권장하려는
'통속적인 교화방편설(敎化方便說)'이라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그 이유는 업설이 불교의 무아설과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업설뿐만 아니라
무아설에 대해서도 올바로 이해가 된 것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불교의 무아설은 앞서 십이연기설의 중도설(中道說)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무명 망념에 실재하는 아(我)가 없다는 것이지
망념 그것까지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생사윤회는 바로 그런 망념 때문에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업설과 무아설은 이론적으로 아무런 모순이 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만을 확실한 것으로 본다는데(십이처설),
이런 입장과 삼세업보설은 모순되지 않느냐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숙세나 내세와 같은 것은 보통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불교 교설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는 볼 수가 없다.
석가모니께선 각 종교의 진리성 주장에 대해서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현실 세계의 관찰로부터 출발할 것을
주장한 것은 앞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종교적 진리에 도달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현실적인 문제로 시종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이다.
불교의 삼세업보설은 권위주의적 입장에서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인과를 관찰하면
누구나 그 필연성을 추단(推斷)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업설은 단순히 인간의 합리적 사유의 소산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처럼 깨달음을 이루면 삼세업보의 실상(實相)이
직접 인식되는 숙명통(宿命通)이나 천안통(天眼通)과 같은 지혜도
발생한다고 한다.
따라서 불교의 삼세업보설에 대해 부정적 태도로 임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불교에 입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부터 실천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이라고 하겠다.
불교의 계율은 업설에 입각한 것이며,
과거 칠불(七佛) 또한 모두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 七佛通戒偈)을 읊고 계신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힘써 하며 그 의지를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석가모니께선 당시 인도사회의 사성제도(四姓制度)를 비판하고
배격하신 것도 업설의 정신에 의했던 것이다.
사성은 모두 선, 악업에 의해 상벌이 결정되는 것이니,
귀천은 업에 의한 것이지 종성(種姓)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잡아함 권 20>

바라문교의 공희(供犧, 邪盛大會)에 대해서도
수백 마리의 소와 양 등을 살상하는 것은 반대하셨으니,
이것 역시 업설의 불살생에 의한 것이다.<잡아함 권 4>
불교 업설의 사회 윤리적 성격은 오늘의 민주사회에 있어서도
깊은 관심을 받을 만하다.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 등이 민주시민의 기본정신이 되어야 하는데,
업설에서의 업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입각한 능동적 행위이며,
보(報)는 그에 대한 철저한 책임을 행위자에게 지우고 있다.
또 현대사회가 바라는 인간관은 현실 극복의 강인한 의지를 가진
창의적 인간이라고 보겠는데,
업설의 정신은 바로 그런 입장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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