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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제를 풀어내는 연기공식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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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림사 댓글 0건 조회 720회 작성일 21-03-19 16:19

본문

〈삶의 문제를 풀어내는 연기공식 上〉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이다

      지난번에 고정관념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그대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지난 내용을 바탕으로 오늘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괴로움을 불교에서 어떻게 풀어내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외도들이 부처님께 와서 “부처님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이야기 하십니까?” 질문하면 항상 부처님께서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경전에 나옵니다. 부처님의 출가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 그 괴로움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된 거죠. 생로병사라고 하는 괴로움의 문제가 가장 근원적인 괴로움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게 되었고, 그걸 한 마디로 정리한 게 바로 사성제四聖諦이지요.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과 갈애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괴로움이 있고, 그 괴로움의 내용이 있습니다. 생로병사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또 감정적인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 비탄,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괴로움들입니다. 이런 괴로움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부처님께서는 집착과 갈애로 설명을 하셨지요. 갈애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이 열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애를 어떻게 소멸할 것인가, 괴로움을 어떻게 소멸할 것인가에 대한 소멸에 이르는 길을 팔정도로 정리하신 거죠.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고, 이것을 사성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이것이 사성제인데, 사성제에서 집성제集聖諦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으로 갈애 정도를 말씀하셨는데, 다른 데서 이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한 게 바로 연기, 십이연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집성제와 멸성제를 밝히신 것이 십이연기다

      괴로움의 발생구조, 그러니까 왜 괴로움이 일어나는지, 그 원인이 바로 집성제이지요. 집集이라는 건 원인을 이야기합니다. 사성제를 설하실 때는 원인을 갈애라고만 하셨지만, 십이연기에서 괴로움이 발생하는 구조를 열 한 개의 인과관계로 설명하셨어요.

 

 

    왜 삶에 괴로움이 있는가,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거죠.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괴로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태어남은 왜 일어나는가.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는 업으로서의 존재를 이야기해요. 존재는 왜 생기는가. 그것은 바로 취착과 갈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십이연기에서 앞의 몇 가지를 생략하고 가장 근원적인 갈애라는 것을 드러낸 게 집성제입니다. 다시 갈애와 취착이 왜 생기느냐, 그것은 감각접촉 때문이지요. 느낌이 있고, 감각접촉이 있고 육처六處가 있고, 물질과 정신, 그리고 식識이 있고, 행行이 있고, 무명無明,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무명을 설하셨지요.

 

 

   괴로움이 일어나는 구조를 집성제에서는 간단하게 갈애라고만 설하셨지만, 십이연기에서는 열 두 개의 요소, 다시 말해서 열 한 개의 연기구조로 설명을 하신 겁니다. 무명 때문에 행이 있고 행 때문에 식이 있고 이렇게 열한가지가 나와요. 이렇게 자세하게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한 것이 바로 십이연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멸의 구조인 멸성제滅聖諦에서는 갈애의 소멸이라고만 말씀했지만 십이연기에서는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고, 이렇게 소멸의 구조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셨어요. ‘앙굿따라니까야’에 연기의 일어남이 바로 집성제이고, 연기의 사라짐이 멸성제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집성제와 멸성제를 자세하게 드러낸 것이 십이연기의 내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바른 삼매와 계가 필요하다

   이건 여러분이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때 연기적인 고찰과 통찰을 통해 괴로움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의 근원에 접근할 수 있다는 거예요. 첫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괴로움을 자각해야 해요. 두 번째는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이 소멸되고,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이것을 이해하고 통찰하고 꿰뚫어 아는 게 바로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연기적인 고찰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일부러 연기를 강조해서 ‘연기 위빠사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연기 위빠사나를 잘하기 위해서는 삼매가 있어야 합니다. 사마디samadhi의 힘이 있어야 바르게 지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상윳다니까야’에 기반경이라는 경이 있습니다. 기반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삼매가 바로 여실지견如實知見의 기반이고 토대라고 말씀하셨어요. 여실지견이라는 건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데, 위빠사나 수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바로 바른 삼매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바른 삼매는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의 선정을 바른 삼매라고 합니다. 그리고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계율이 필요해요. 계戒를 잘 지키는 것은 삼매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괴로움과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소멸을 보는 것이 위빠사나인데, 삼매와 계가 이것을 지원해주지요. 계정혜戒定慧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설명한 것이 팔정도입니다. 바로 도성제이죠. 이렇게 사성제와 연기법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연기는 주로 정견正見을 명확히 드러낸 가르침이고, 팔정도는 정견을 우리가 터득하고 체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첫 번째다

      연기 위빠사나라는 수행에서 처음 시작은 괴로움을 이해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이 도대체 뭔지 이해하는 거예요. 괴로움에는 육체적인 괴로움도 있고 정신적인 괴로움도 있는데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첫 번째 단계로 여러분의 마음에서 어떤 내용들이 오가는지, 어떤 심리적인 현상들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고 지켜봐야 합니다. 지켜본다는 건 자신의 마음에 어떤 게 있는지 있는 그대로 보는 거죠. 왜곡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겁니다.

 

 

    지켜보기가 수행의 시작인데 사람들을 가르쳐보니까 쉽지 않더군요. 지켜보는 것 자체를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제대로 지켜보면 번뇌가 사라지게 됩니다. 번뇌 없이 봐야 지켜보는 게 되기 때문에 번뇌가 개입될 수 없고, 그러면 자신의 사견이나 편견, 고정관념이 버려지는데 대체로 지켜본다고 하면서 자기 식으로 바라보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건 안 보는 경우가 많아요. 지켜본다는 것이 알아차림을 실천하는 제일 첫 번째 단계인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알아차림이 아니죠. 수행하는 게 아니라 자기 원래대로 사는 것밖에 안 됩니다.

 

 

-개입과 조작, 취사선택하는 것은 지켜보기가 아니다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거기에 대해 좋거나 나쁘다는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지하고 아는 것만 말 그대로 포착하는 걸로 끝나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는 것만 있어야 해죠. 요즘 티브이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많지요. 항상 쫓아다니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서 그 중에 재미있는 걸 뽑아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이렇게 카메라가 쫓아다닐 때 잘한다고 찍어주고 못한다고 안 찍는 게 아니죠. 그 모습 그대로만 찍잖아요. 그리고 카메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얼굴을 돌린다거나 좋다고 막 다가가거나 그러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자신이 원하는 것만 알고 싶어 하고, 원치 않는 것은 아예 안 보고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수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건 자기 업대로 가는 거예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뿐이지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거죠.

 

 

    지켜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켜보는 거예요. 자신이 상황에 개입하거나 마음대로 조작하는 게 아니고 그냥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만 하면 되죠. 이건 마음에 드니까 더 보고 싶고 저건 배척하는 것은 올바른 지켜보기가 아닙니다. 무엇이 일어나도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라는 겁니다. 탐욕이 일어나면 탐욕이 일어난 걸 보고, 다시 탐욕이 일어나면 다시 일어난 걸 보면 돼요.

 

 

-있는 그대로 봐야 수행이 나아갈 수 있다

      일어나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하면 번뇌가 일어났을 때, 그 번뇌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개입하지 않으면 몇 번 지켜보다 보면 가라앉습니다. 왜냐하면 세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자꾸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반응을 하니까 번뇌가 점점 더 커지는 거예요. 반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만 본다면 번뇌가 커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아요.

 

 

    우리가 화면을 보고 있을 때 순간순간 하나 둘 화면에서 지나가듯이, 살아가면서 보이는 그 상황들을 그대로 알기만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그에 대해서 판단하거나 비판하거나 분별하지 말고 일단은 그냥 보는 연습을 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잘 되면 찰나삼매라고 하는, 순간순간의 삼매가 되는 거예요. 탁, 탁, 탁, 탁 알아야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원치 않는 것은 버리는 취사선택을 하면 그건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왜곡해서 보는 거죠. 지켜보기가 첫째로 돼야 수행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는 이유는 거기에 대해 반응을 해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유치한 모습이나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모습, 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질투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보기가 싫어요. 눈을 감고 싶고, 안 보고 싶어서 거기에 포장을 하고 합리화 합니다. 이런 여러 작용이 들어가면 지켜보기가 안 되고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죠. 거기에 대한 분별과 판단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지켜보기가 잘 안 되죠.

 

 

-도망치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라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게 수행의 첫 걸음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도망가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보기 싫은 자신의 모습이라도 도망가거나 피하지 말라는 거죠.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자꾸 정당화하고 포장해서 안 보려고 하면 여러분은 수행을 하는 게 절대로 아니에요. 그건 어떻게 보면 밖에서 힘드니까 잠깐 선원에 와서, 아 나는 참 훌륭한 사람이고 수행하는 사람이다, 난 착한 사람이다, 이렇게 약간 자신을 위로하는 것에 불과한 거예요. 그러다 선원에서 너무 깊이 들어가면 머리 아프니까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죠. 세속이 힘들면 절에 왔다가 절에서 힘들 것 같으면 다시 세속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악순환이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수행을 잘못 이해하면 신비적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신비적으로 보고 하늘이 뻥 뚫린다거나 번쩍번쩍한 것을 보는 그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부처님은 항상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법문한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말은 굉장히 깊이 있고 심오한 말입니다.

 

 

    여러분이 왜 괴롭습니까. 여러분 마음에 번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욕심과 집착이 괴롭히고, 성냄이 괴롭히고, 화와 어리석음이 여러분을 괴롭혀요. 이런 것을 직시하는 건 지혜이지만 이걸 감추고 왜곡하는 건 어리석음의 작용이에요. 이런 게 자꾸 작용하면 핑계 대고 외면하고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은 파악 못하고 스스로를 포장하고 감춰둔 모습으로만 흘러간다는 거예요.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첫 단계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단계예요. 자신의 진실을 대면하는 건 어렵고 두려우니까요.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빨간 약을 고를지 파란 약을 고를지 선택하는 게 나오죠. 어떤 것을 먹으면 진실을 보고 다른 것을 먹으면 모르고 살아가는 건데 어떤 사람들은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자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직시하지 않고 방치한 채 살다보면 결국은 평생이 지나도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요. 약간 고통이 완화되었다가 다시 심해졌다 하는 수준에서 반복하며 사는 거지요.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야 개선할 길이 열린다

      여러분이 자신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의 모습에 직면해야 합니다. 이것에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괴로움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게 바로 괴로움의 진리에 대한 이해이고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괴로움의 진리에 대한 이해를 불교에서 지혜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이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이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해, 이 네 가지를 불교에서는 근본적으로 지혜라고 이야기해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네 가지를 모르는 걸 무명, 어리석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일반적으로 세속에서 어리석다고 하는 개념보다 훨씬 깊이 있는 개념입니다. 쉽게 몸에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여러분 마음속에 종기들이 엄청 많아요. 종기들이 가득 있으면 조금만 툭 건드려도 엄청 아픈 것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곪은 것들이 있고 그걸 건드리면 엄청 괴로운 거죠. 그래서 보호하고 안 건드리려고 해요. 하지만 처음에 아파도 짜내고 나면 시원하고 더 이상 그것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데, 그걸 드러내기 싫어하고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감추려고만 하면 근원적으로 그 문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야 처방이 가능해요. 문제를 인정해야 이걸 버릴 수 있는 단계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옆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조언을 하면 대체로 사람들이 반발을 해요. 자신에게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화를 내고 반발하고 피하거나 도망가는 방식으로 대응을 하죠. 이러면 이제 자신의 문제를 볼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인정을 하면 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이 열려요.

 

 

-문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고성제의 이해다

    이것이 초보적이고 쉬운 단계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단계이기도 합니다. 감성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지요. 자존심을 내세우면 안 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맞는 거 같긴 한데 그걸 인정하려니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감정적으로 수긍이 안 되는 거죠. 당신이나 나나 똑같지 뭐, 나름 나도 똑똑한 사람인데, 이러면서 반발을 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죠.

 

 

    이걸 수용하는 것이 바로 고성제苦聖諦를 이해하는 겁니다. 수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고 종기를 만들고 마음을 곪게 하고 얽히게 만드는 요소라는 걸 이해하면 인정하게 되거든요. 이게 괴로움이고 이걸 붙들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문제를 푸는 연기공식

    먼저 이해가 돼야 합니다. 수긍하고 인정한 다음에야 문제가 왜 자꾸 발생하는지 원인을 알 수 있잖아요. 여러분에게 있는 괴로움의 원인을 스스로 찾기는 힘든데, 그 원인을 찾아가는 방법을 바로 부처님께서 십이연기로 설하신 거예요. 저는 이것을 ‘연기공식’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우리 삶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풀어내기 위해 부처님께서 하나의 공식으로 제시한 거예요. 너의 문제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그러하다고 제시하신 거죠. 이것을 우리 삶에 실제 적용해서 풀어내면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그렇지 않고 자꾸 외면하고 도망가고 반발하고 버티면 괴로움은 점점 커져서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문제들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열한 가지의 연기공식을 설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열한가지 연기구조로 설명을 한 겁니다. 무명 때문에 행이 있고 행 때문에 식이 있고, 이러한 구조를 설명해서 우리 삶에 일어나는 문제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을 한 겁니다.

 

 

-탐욕과 성냄 없이 고요함을 바탕으로 하는 사유가 바른 사유다

      처음에 지켜보기 과정을 통해서 직관적인 지혜라는 걸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엔 사유가 들어가지 않지요. 지켜보기에는 사유가 들어가지 않아요. 그냥 보기만 합니다.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그냥 일어나는 대로, 마치 한 걸음 떨어져서 카메라로 찍듯이 그 상황을 보기만 한다는 말이에요. 여기는 사유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사유가 들어가면 이건 지켜보기가 아니에요. 생각 없이, 판단 없이 그냥 보고 알기만 하면 됩니다. 이걸 지켜보기라고 하지요.

 

 

    그리고 직관지라는 게 있습니다. 세속적으로 얘기하면 이건 직관적으로 아는 겁니다. 그런데 팔정도에서 말하는 바른 사유를 할 때는 전제조건이 있어요.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하는 사유는 부처님께서 그렇게 권유하는 사유가 아니에요. 그런 사유는 거의 탐욕과 성냄을 바탕으로 하거든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른 사유는 탐욕이 없는 사유, 성냄이 없는 사유, 또 남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사유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른 사유예요.

 

 

      이렇게 탐욕과 성냄이 없다는 걸 다른 말로 하면 그게 삼매 상태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아주 또렷하게 깨어있는 상태가 되어야 그렇게 돼요. 그래서 지켜보기를 해도 찰나삼매라고 하는 사마디가 생깁니다. 그걸 통해서 반조를 해도 됩니다. 이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호흡수행이 있습니다. 호흡을 통해서 마음을 가라앉혀 고요하게 한 다음, 그 고요한 마음으로 반조를 하는 방식도 있어요.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지혜가 생기는 데 기반이 되는 게 바로 삼매입니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지혜가 생기고, 고요함을 바탕으로 하는 사유라야 불교에서 말하는 바른 사유가 된다는 거예요. 바른 사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지혜를 조사의 지혜라고 합니다. 조사, 반조, 조사지, 반조지, 추론지 등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조사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 번뇌가 놓이지 않고 마음이 가라앉거나 고요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반조를 한다고 원인을 생각하고 찾는 것은 제가 볼 때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화가 나고 성질이 잔뜩 나 있는 상태에서 반조를 하면 그게 어디로 가겠어요. 남에 대한 원망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과 화를 더 키우는 쪽으로 갑니다. 화가 가라앉게 만들고 화를 직시하는 쪽으로 가지 않아요. 그래서 반조를 하기 전에는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이어야 합니다. 지켜보기 상태에서 딱 인정을 하면 그 마음이 가라앉거든요. 정말 이것이 자신의 문제이고 이게 진짜 괴로움의 문제라고 수긍하고 인정하면 마음이 가라앉는데 그럴 땐 반조를 해도 돼요.

 

      그게 안 된 상태에서 마음에 화가 잔뜩 나 있는데 왜 이런 문제가 자꾸 생기는지 찾아봐도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자기를 비호하는 쪽으로 원인을 찾게 됩니다. 이건 결코 제대로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반조를 할 때는 반드시 삼매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가라앉아야 해요. 화와 탐욕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해야 좋은 지혜가 생기지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거죠.

 

 

-삼매를 통한 반조의 힘은 강력하다

      삼매를 바탕으로 반조를 해야 가능하고, 지켜보기를 통해서 생긴 찰나삼매를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는 호흡수행할 수 있습니다. 호흡수행을 통한 선정을 얻는다면 그건 정말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찰나삼매라는 것은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짧게 짧게 삼매가 이루어지지만, 호흡수행을 통해서 만약 선정에 들게 되면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몇 시간동안이라도 그 사이에 단 한 번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거든요. 완벽하게 마음이 청정한 상태가 돼요. 이런 상태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향성도 일시적으로 놓아집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사고패턴도 무너져 버려요.

 

 

      그러나 위빠사나를 통해 얻어지는 찰나삼매 등에서는 정말 자신의 생각이 놓아졌는지 확신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자신의 경향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선정 상태에 들어가면 꽤 오랜 시간 완전히 놓아진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에서 보기 때문에 아주 깊이 있는 반조가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아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상태에서 자기 문제를 접근하면 그건 거짓되지 않은 원인, 근원적이고 진실하고, 정말 이것일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냅니다. 물론 답은 다 있어요. 부처님께서 어느 정도 답을 내 놓았는데, 그걸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거죠. 여러분이 평생 살아오면서 익혀온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현재 작용하는 걸 잠재성향이라고 합니다. 잠재성향이라고 하는 것은 이생뿐 아니라, 불교적으로 보면 세세생생 익혀온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습관이 현재 어떤 조건을 만났을 때 불쑥불쑥 작용을 하거든요. 이런 잠재성향까지 볼 수 있으면 수행이 굉장히 깊어지게 되고 이제 진정으로 번뇌를 소멸할 수 있게 되죠. 원인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이렇듯 삼매가 필요해요. 제가 기본적으로 초보자들한테는 위빠사나 수행을 시키는데, 위빠사나를 하더라도 너무 위빠사나만 하지 말고 가끔씩 호흡수행을 통해서 삼매를 닦는 것을 해야 합니다. 한 시간이라면 45분 정도 호흡수행을 하고 나머지 10분이나 20분동안 자신의 문제를 들고 반조를 하면서 원인을 찾으면 훨씬 깊이 있게 반조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삼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이해하시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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