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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알아차림과 호흡수행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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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림사 댓글 0건 조회 788회 작성일 21-03-21 13:01

본문

<몸에 대한 알아차림과 호흡수행 下>

 

-바른 기억으로 바른 삼매가 가능하다

사띠에 이어 아나빠나사띠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 즉 들숨날숨에 대해서 잊지 않는다고 할 때 보통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숨에 집중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부처님께서 왜 아나빠나사마디Anapanasamādhi라고 하시지 않고 아나빠나사띠라고 하셨겠어요. 만약 집중이 중심이 된다면 아나빠나사마디라고 하셨겠죠. 그러나 아나빠나사띠라는 수행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띠라는 뜻입니다.

 

들숨날숨이라는 것과 마음이 도망가지 않도록 사띠라는 밧줄로 묶어주어야 집중을 하든지 말든지 하잖아요. 그래서 만약 다른 데로 도망치면 들숨날숨을 망각하지 않고 빨리 숨으로 돌아오라는 거예요. 물론 여기에는 다른 것을 쫓아가봐야 쓸모없다고 직관적으로 작용하고 판단하는 바른 지혜가 같이 있어야 하지요. 다시 빨리 숨으로 돌아와서 숨에 머무르고 정착되면 우리 마음이 딴 데로 가는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저절로 집중이 될 겁니다. 집중이 안 되고 산만한 건 다른 대상으로 자꾸 돌아다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나 사띠, 바른 기억과 잊지 않음에 의해서 숨에 마음이 딱 붙어 있게 되면 모든 마음이 여기로 몰리게 되어 있어요. 이러면 자연스럽게 집중이 됩니다. 이것을 삼마사마디sammāsamādhi, 바른 삼매라고 하는 거예요.

 

팔정도에서 정정진正精進 다음에 정념正念이 나오고 정념 다음에 정정正定이 나옵니다. 정정진은 불선법을 버리고 선법을 계발하는 걸 말하는데 여기에는 어떤 것이 불선법이고 어떤 것이 선법인지 명확히 기억하는 것, 불선법으로 가지 않고 선법에 머무르게 하는 것, 선법에 마음이 정착되게 하는 게 필요하겠지요. 이렇게 불선법이 작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띠의 역할이에요. 바르게 기억해서 바르게 잊지 않는다는 거죠. 이러면 불선법이 일어나지 않고 선법에 정착이 되겠지요.

 

예를 들어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들숨날숨이라는 것을 하고, 이에 대해서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정진이지요. 이걸 잊지 않고 있고 사띠를 지속하는 것은 불선법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요. 이렇게 하다보면 불선법을 버리고 선법이 일어나는 것에 마음이 정착이 되고 우리 마음에 희열이 일어납니다. 알아차림이 확립되면 불선법이 버려지고 탐욕과 성냄이 버려지니까요. 이게 버려지면 희열과 행복이 일어나고, 그 행복으로 인해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삼매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해지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동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아나빠나사띠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사띠와 사마디는 다른 영역입니다. 사띠는 대상을 기억해서 그 대상을 잊지 않게 합니다. 그러니까 들숨날숨을 잊지 않고 들숨날숨에만 마음이 가도록 하는 게 사띠의 역할이에요. 그러고 나서 드러난 들숨날숨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가 사마디입니다.

 

-오장애가 버려져야 바른 삼매에 든다

그런데 집중이라는 건 탐욕이 바탕이 돼도 대상에 빠져들 수 있어요. 여러분이 드라마 볼 때도 드라마에 집중하지요. 보통 탐닉한다고 하잖아요. 이건 어떤 원하는 대상에 빠져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상태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사띠는 이런 상태가 아니라 탐욕과 성냄이 없는 상태, 바른 기억이에요. 정견을 바탕으로 하는 잊지 않음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해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들어가면 안돼요. 탐욕에 의해서 어떤 대상에 집중이 된 건 삿된 집중, 밋차 사마디micchāsamādhi라고 합니다.

 

바른 삼매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기억이 돼야 해요. 바른 잊어버리지 않음으로 들숨날숨에만 마음이 가 있으면 사띠가 들숨날숨만 딱 잡고 있기 때문에 집중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요. 그런데 여러분이 의도적으로 집중하려고 할 때 대체로 탐욕이 개입하기 때문에 삿된 집중이 되기가 쉽습니다. 잘 하려고 하고 집중하려는 마음에는 보통 자신도 모르게 탐욕이 보통 개입이 되거든요. 탐욕이 개입되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수행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뜻대로 잘 안되지요. 욕심을 내는 것 자체가 수행을 방해하는 요소니까 수행이 잘될 리가 없어요. 수행이 안 될 수밖에 없어요. 빨리 막 집중해서 뭔가 반짝반짝하고 빛나는 무언가에 도달하고 삼매에도 들고 싶은데 이게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욕망과 스트레스는 동전의 양면 같은 거거든요. 이러면 수행이 잘 안되고 괜히 힘만 들기 쉬워요.

 

이런 게 아니라 단지 호흡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이 숨을 놓치지 않고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쓸데없는 노력을 안 하게 되고 힘이 빠집니다. 필요한 노력만 하게 돼요. 이러면 저절로 우리 마음이 호흡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됐을 때 소위 말해서 사마타 수행이 되는 거지요. 호흡수행이라는 건 철저히 쉬는 수행이에요. 물론 긴장을 완전히 풀고 쉰다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호흡을 망각하지 않을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긴 하지만요. 망각하지 않으면 돼요.

 

이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오장애가 버려지고 탐욕과 성냄이 버려집니다. 오장애가 버려지면 이제 자연스럽게 이 숨에 머물러 있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 자체가 희열과 행복이 드러나고 그냥 앉아있는 자체가 너무 행복해지는 거예요. 이렇게 삼매에 드는 것이지 막 집중한다고 삼매에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수행에 접근하는 원리 자체가 틀리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탐욕을 가지고 수행에 접근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수행을 점점 힘들게 만들지요. 그냥 숨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딴 데로 가면 다시 여기를 망각하지 않으려고 여기에만 오다보면 저절로 나중에 산란하게 움직이는 마음들이 사라지니까 자연스럽게 하나에 집중이 되고 사마디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정념 다음에 바른 사마디, 삼마 사마디가 오고 정정이 오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삼매는 망각되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대상 자체를 망각하지 않고 하다보면 저절로 삼매에 들게 된다는 거죠. 삼매든 위빠사나 수행이든 망각하지 않고 우리가 관찰해야 할 대상에 마음이 계속 머물러 있고 거기에 확립되면 오장애가 버려지고 자연스럽게 찰나삼매든 본삼매든 들게 됩니다. 호흡수행 같으면 본삼매, 완전히 몰입된 초선 2선 3선 4선까지 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삼매가 됐든 결국 이건 희열과 행복으로 갑니다. 어떤 게 됐든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온다는 거지요. 수행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물론 초보자 때 매번 망각하던 사람이 망각하지 않으려면 좀 애를 써야 되긴 하지만요.

 

바른 정진이 들어가야 해요. 근면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는 조금 힘든 면도 없잖아 있겠죠. 그러나 이런 건 비세속적인 괴로움이에요. 성장시켜주는 괴로움이고 성장통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정도 힘든 것 없이 어떻게 마음에 평화를 얻겠어요. 그런 건 공짜를 바라는 거지요. 사실사띠가 확립되는 것의 전제조건이 노력입니다. 노력, 바른 정진이 있어야 합니다. 바른 정진이 있고 나서 , 삼마 사띠, 바른 사띠가 있는 거예요. 망각하지 않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꾸 수행의 주제라든가 바른 견해, 우리가 확실히 숙지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을 꾸준히 해야 잊지 않음으로 확립되는 거예요. 이래야 마음에 완전히 확립이 돼서 다시는 멀어지지 않는 마음상태를 계발할 수 있는 거예요.

 

호흡수행도 탐욕이나 성냄, 특히 집착을 가지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탐욕과 성냄이 버려진 상태가 되어야 삼매에 듭니다. 철저히 오장애가 버려졌을 때 삼매에 들 수 있어요. 결국 호흡이라는 대상을 놓치지 않고 그 대상만 알고 그 상태로만 가만히 있으면 오장애가 버려지면서 저절로 가는 것이 사마디예요. 여러분이 억지로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계속 스트레스만 받고 힘만 들어요. 보통 사람들이 사마타 수행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가 세속에서 일을 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삼매를 얻거나 선정을 얻는 방식은 세속의 일과 완전히 패러다임이 다릅니다. 세속에서는 집착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수행에서는 이걸 버려야 되거든요. 집착을 버리지 않고는 어떤 수행의 경계에도 갈 수 없습니다.

 

-모든 수행에는 바른 기억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만약 보시를 한다고 했을 때 일어나는 마음은 선한 마음일 겁니다. 불교에서 선한 마음이 일어날 땐 반드시 사띠가 있습니다. 그럼 이땐 어떤 사띠가 작용했을까요. 뭔가를 알아차림 한 것은 아니잖아요. 부처님께서 보시의 공덕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에 바른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수행할 때 현재 이 순간에 머물고 이걸 망각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는 건 약간 전문화된 부분이고 사띠의 여러 영역 중에서 수행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한 것이지요.

 

계를 지키는 것도 뭐가 필요하습니까. 여러분이 오계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계를 지킬 수 있겠어요. 오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기억을 해야 계를 지킬 수 있을 거예요. 스님들은 기본적으로 227개의 비구계를 지켜야 하는데 이걸 못 외우면 스님들이 이걸 지킬 수 없을 겁니다. 계목이 뭔지도 모르는데 지킬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스님들은 보름에 한 번 포살을 하면서 227계를 암송합니다. 계목들을 상기하는 거죠. 이걸 외우면서 혹시 자신이 행했던 행동 중에서 계목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점검하는 거죠. 만약 계를 어기는 일을 했으면 일어나서 잘못했다고 참회하고요. 보통은 하기 전에 다 참회하고 들어와요. 한 명씩 참회하다보면 포살하는 시간이 하루종일 걸릴 수도 있거든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에 차이는 있지만 모든 수행에는 바른 기억이 다 개입되어 있습니다. 바른 기억이 안 되면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선법이라는 게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이것이 선한 것이고 이건 불선한 거라는 명확한 기억이 있어야 가능하잖아요. 물론 이해가 있어야 하지만 이해만 하고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리면 소용없겠지요. 평소에 자신의 마음에 새기고 언제든지 행위를 할 때 이게 딱 작용이 돼야 우리 삶에 녹아날 수 있잖아요. 여러분이 법회 때 와서 듣고는 툴툴 털어버리고 나가서 망각하니까 일상 삶에 돌아가면 부처님 말씀이 삶에서는 적용이 안 되는 거지요. 이게 다 사띠가 없어서 그래요. 바르게 기억되지 않고 망각되었기 때문이지요. 부처님 당시 법은 암송해서 구전으로 내려왔잖아요. 이것도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부처님 제자들은 경전을 결집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 암송했기 때문에 삶에 적용이 될 수 있었고 기본적으로 망각되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히 기억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걸 알 필요는 없어요. 연예인들이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너무 많이 아는 게 별로 여러분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법에 합당한 바른 기억, 바른 견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철저히 알아야 할 것을 철저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래야 우리 삶과 수행에 적용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가끔 수행자가 아주 초보적인 걸 암기나 하고 있는 건 너무 유치하다고 여기면서 배움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정말 잘못된 겁니다.

 

부처님께서 수행 말씀하시면서 신심과 함께 배움을 말씀하셨잖아요. 신심을 바탕으로 해서 배워야 돼요. 배우지 않으면 법이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리고 배운 것을 그저 배운 걸로 끝나면 않고 기억을 해야 합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마음에 철저히 새겨서 어떤 상황에서든 법이 작용되도록 해야 진짜 공부가 되는 거죠. 이러면 분명히 향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는 건 하지 않고 듣고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가르침이 마음에 완전히 확립되고 완전히 정착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또 잊어버리고 다른 쪽으로 작용하게 되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깊이 있는 것이고 가장 정확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띠가 바른 기억이라는 측면, 또는 잊지 않는 것, 불망으로 이해가 되어야 불교를 이해하는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알아차림이라고만 이해하면 사띠가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뜻이 너무 줄어들어요.

 

-사띠는 감각기능 단속과 꿰뚫어 이해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감각기능의 단속이라는 말을 하는데 감각기능의 단속에서도 사띠가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느 여자를 보고 이에 대해서 표상을 취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이런 것이 위험하다고 이해하고 기억해내야 하는데 기억하지 못한다면 또 그쪽으로 흘러갈 거 아니에요. 부처님께서는 감각기능을 단속하라고 하셨는데 단속이라는 의미에는 바른 기억, 바른 잊지 않음이 들어가야 돼요. 이렇게 기억이 문지기와 같은 역할도 하지요.

 

또한 어느 대상에 대해서 잘 살피고 대상에 깊이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대상을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겠지요. 지혜가 작용하기 위해서도 그 대상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어떤 문제를 하나 풀려고 일주일동안 그것만 잡고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 문제 하나 들고 계속 며칠을 생각하다가 꿈에서도 생각하고 이런 학생들도 많거든요.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문제를 잊지 않고 계속 생각이 작용될 수 있도록 해줘야겠지요. 이래야 이모저모 깊이 관찰하고 결국 문제를 완전히 꿰뚫어 알 수 있겠죠. 바로 이런 것이 사띠의 역할이라는 거죠. 대상에 대해서 바르게 기억을 해야 깊이 들어갈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마음이 여기저기로 왔다갔다 하면 깊이 갈 수가 없는 거죠.

 

오늘은 제가 사띠의 의미가 바른 기억이라는 걸 말씀드렸는데 결국 호흡수행도 사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잊지 않는 것에 노력을 하는 거예요. 자꾸 무언가를 하려하거나 얻으려 하지 않고 숨을 잊지 않고 숨에만 머물러 있는 것, 숨에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에 노력을 하다보면 저절로 오장애가 버려지고 저절로 삼매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사실 오늘 말씀드린 내용이 기존의 패러다임들과는 달라서 반발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부처님께서 어떤 용어를 쓰실 때는 정말 그냥 쓰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당신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셨거든요. 사무애해四無碍解라고 들어보셨죠. 사무애해 중 하나가 언어에 통달하는 지혜예요. 첫째가 드러난 결과에 대해서 잘 아는 것, 두 번째가 원인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그리고 다음으로 언어에 능통한 겁니다. 언어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지요. 또 나머지 하나는 설법에 능통한 건데 이 네 가지를 사무애해라고 하거든요. 부처님께서는 명확하게 언어를 활용하고 사용하시지요. 그런데 단순히 기억이라고 하면 너무 수행 같지 않고 어설퍼 보이고 기억이라 하면 사람들은 과거의 걸 기억하는 것만 주로 생각해요. 그러나 이 속에 담고 있는 뜻은 훨씬 폭넓고 깊이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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